이생진 시인의 <아내와 나 사이>

 

시인 / 이생진 (1929~ )

 

 

아내는 76이고

나는 80입니다

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

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

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

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

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

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

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

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

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

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

서로 모르는 사이가

서로 알아가며 살다가

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

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

인생?

철학?

종교?

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

 

____________________________

 

이생진 시인의 아내와 나 사이라는 입니다.

 

이 시의 글귀처럼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.

 

아웅다웅 하며 지내는 현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행복일 것입니다.

 

언제나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잊혀질지 모른다는 아련함이 가슴에 사무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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